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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stories of my indian summer

음악

2007. 12. 10. 15:18


내게 있어서 음악이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과도 같다
그 안에는 전지자께서 미리 만들어 놓으신
수만개의 조각들이 있다
 
그가 부르실때
혹은 내 필요에 의해서
나는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조각들 중 하나를 만지기 시작한다
 
어떤 때에는 그가 계획하셨던
혹은 내가 생각했던 조각이 맞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비슷한 모양의 조각
아니, 심지어는 전혀 예상과 다른
엉뚱한 조각을 만지고 있기도 하다
그럴 때에는 그 조각에서 손을 떼고
얼른 다른 조각으로 옮겨간다
 
방에서 나오면
그 조각을 만졌던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잠깐 사이에 나는
그 모양을 잊을 때도 있고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살을 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전혀 창조가 아닌
그가 만들어두신 수만개 중 하나를
그저 베끼는 일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내가 만졌던 조각들의 기억의 잔재도 남아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본 기억도 역시 남아있는 가운데
내게 허락하신 그 조각의
고유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과정은
내게 남겨주셨다
 
장르는 무의미하다
그 안에는 클래식도 있고 재즈도 있고
찬양곡도 있고 하드록도 있다
 
자,
이렇게 하나의 음악이 완성된다
이제 어떻게 하면 그 깜깜한 방 안에서
옳은 조각을 찾느냐
그리고 그 조각을 만졌던 기억을 잊지 않고
옳은 그림을 그리느냐
두가지가 관건이다
 
이 두가지를 잘하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이별
침묵과 인내
그리고
기도이다
아주 가끔은 학습과 연습이 필요하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창작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영감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거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학습의 결과라고도 한다
 
내게 있어서 음악은
전지자가 애써 만들어놓으신 조각의 그림을
결국은 100% 똑같이 베껴내지 못하는
실패작들의 연속일뿐이다
하지만 그분은 실망하지 않으시며
오늘 또 오늘에 어울리는 하나의 조각을 건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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