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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stories of my indian summer

살아남기

2007. 4. 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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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버리지 않고 모아둔
한두개의 가치들
 
계곡을 건너기 위해
진흙탕을 지나기 위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그것들마저
내 손으로 목을 조르고
밟고 지나간다
 
혼 깊숙이 뿌리내렸던
필레몬 컴플렉스
그 이후에 몰아치는 후폭풍들로
나는 또 얼마나 무너졌던가
 
피투성이가 된 손에
걷어차일수록 더 날카로워지는 눈빛으로
다 찢어 터진 발을 이끌며
다음 산을 넘으면 무지개가 있으리라
망상을 등에 업고
무거운 걸음을 다시 뗀다
 
그저 이 혼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걸음들
그저 삶의 긴 강물 위에서
가라앉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궁극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미가 없을지
알지 못하지만
 
어제는 왼쪽 옆구리를 찌르고
오늘은 오른쪽 어깨죽지를 찢으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외로움

2007. 3. 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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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차들로 둘러싸인 출근길 위에서
문득 외로움을 발견했다
 
사람 많은 대형마트 식당가에서 여럿이 함께 밥을 먹다가
문득 외로움을 발견했다
 
봄비치고는 많이 쏟아진 이번 비에 흠뻑 젖은 거리를
십삼층 높은 사무실 창문으로 내려보다가
문득 외로움과 마주 대하게 되었다
 
싸늘한 바닥에 앉은 새벽 세시
밖으로 보이는 바알간 승용차 불빛들이 보기 싫어
옅은 올리브색 블라인드를 내렸다
 
순간
 
어둠속에서 오랜만이라고 멋적은 웃음으로 손을 내미는 그를
난 굳이 마다하지 않았고
그도 날 발견한 것이 기쁜거라고 착각했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입가에 돌던 바람이
비웃음이라는걸 쉽게 알게되었다
 
스물세살 치기 어린 얼굴로
지금 내 나이가 되면 그런 녀석쯤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거라고 믿었던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비웃듯
아예 내 옆에 자리를 펴고 눕는다
 
생각이 두려워 눈도 감지 못했던
생각할 틈도 주지 않으려 바쁘게 살았던
생각이 싫어서 생각이 미워서
내가 아직도 그 생각 때문에 입술을 깨무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잊고 살았던
그가 다시 형체를 입고 이렇게 나타났다
 
꺼져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고
그는 사라진듯 보였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고
아침이라며 나를 불러 깨우는 목소리에 일어나보니
블라인드 사이로 든 밝은 햇살과
창문을 열고 맞은 시원한 바람에
너무 안어울리는
 
외로움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딜레마

2007. 2. 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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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추억이라는 아스피린으로

하루 20시간의 노동량을 달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족한 기억력은

반복하여 투여하는 것에 질려서

자기암시같은 대사를 친다


"그래, 그랬었어"


그속엔

찔려도 찔린지 모를만큼 가늘게 솟아

내 심장 깊숙이까지 쑤욱 들어와서

필로폰같은 사랑을 한웅큼 쏟아준

0.01nm 굵기의 날카로운 주사바늘을 가진 마음도 있고

쉽게 상처 받고 그 상처를 그대로

내게 돌려주는 입술도 있고

내 지친 한숨을 곱게 받아주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한 친구도 있다


밤이 되면 기어 나와서

나갈 수 없는 뚜껑을 밤새껏 들이밀다가

아침이 되면 지쳐 다시 흙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장수풍뎅이와

하루종일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을

손톱이 다 닳도록 기어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저녁이 되면 충혈된 눈을 비비다 마지못해 쓰러져 자는 나는

닮디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4달이 아닌 4년처럼

4년이 아닌 아주 오랫동안

나를 쥐고 놓지 않는


유츠프라카치아

雪日

2007. 1. 6. 16:32
내 하늘을 가려줄 수 있을만한
큰 눈이 오는 날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죄책감이 들며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슬픔이 먼저 솟아 나는가
 
그 분께서는
내 최악의 선택들과
지키지 못한 약속 뿐이었던 기억과 기억들과
오늘 하루만이라도
차분히 덮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라는
유아기적 소망들에
응답해주시려는 듯
온 산 덮고
그래도 아직 남은 자비를
가득히 부어주신다
 
하지만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애타는 목메임이 일며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다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뒤안길을 또 되새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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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6. 11. 26. 00:48
잠시뿐이라고 생각했던 갈증은
수년에 걸친 반복된 광기로
메마른 열매들을 맺고

잊고 살아왔던
아니 잊고 살아왔다는걸 알게된
푸르고 또 붉고 또 잿빛이었던
내 젊은 날의 진달래가
스무해가 지나
이렇게 초라해진 내 빈 영혼 속으로 스며들었다


일찍 알게되었다면
이만큼 눈물 흘리지 않았을까

성숙이 아닌 눈가림으로만 겹쳐 쌓아놓은
바램과 사실과 현기증들
그렇게 하나둘씩 토해낸
퇴색된 하루하루들은
나날이 줄어만가는 내 기도와
나날이 늘어만가는 내 욕심으로
숱하게 흩어놓기만 한다


일찍 알았다면
이만큼 놓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무겁게 한잎씩 떼어낸
진홍빛 슬픔들이
고맙게도
미처 숨기지 못한채 흘러나온 내 위선을 가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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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진달래 - 하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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