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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stories of my indian summer

아저씨

2011. 1. 5. 17:33

언니,
그 아저씨는 내가 누굴 미워하느냐고 물었어
.
그래서 생각해보았지.
.... 

한참을 그렇게 미운 얼굴들, 미운 이름들을 나열하다 보니 한 가지 느껴지는 게 있더라구
.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어.
모두 적어도 한가지씩은 나보다 나은 점이 있던 거지
.
나보다 예쁘거나,
돈 많은 남자친구가 있거나,
성격이 좋거나,
아님 최소한 나보다
1cm 키라도 컸던 거야
.
머리 속에 떠오른 그 사람들의 얼굴 때문에 찌푸려진 내 인상이 펴지기도 전에 그 아저씨가 나더러
,
그 사람들의 발을 씻겨줄 수 있겠냐고 묻는 거 있지
?
....
언닌 그럴 수 있어? 얼굴만 봐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 사람들의 더러운 발을 내 손으로 씻겨주라구?
....
근데 언니, 그 아저씨가 그러는데
..
그게 이기는 거래
.
그게 내가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던 열등감을 이기고
,
나를 꼼짝 못하게 묶고 있던 증오의 매듭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이래
.
그게 그 꼴 보기 싫은 얼굴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고,
내 삶에서 내가 나에게 이기는 유일한 길이라는 거야
.
....
내가 심란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까,
그 아저씨는 왠지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희미한 미소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어.
만약 다른 사람이 그렇게 날 쳐다보았으면 난 기분 나빠서 한마디 쏘아붙여주었을텐데,
그 아저씨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게 느껴지는거 있지?
....
언니,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미운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그들의 발을 씻겨주고
그.. 용서라는 걸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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