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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stories of my indian summer

망각

2006. 6. 29. 11:50
잊고자 잊고자
잊어버리고자 죽을만큼 애를 쓸수록
더 잊혀지지 않던 것들이

기억하려 기억하려
마음을 다해 붙잡고 있어도
하나둘씩 강을 건너가는건

시간이라는 약과
망각이라는 축복
저승 문 앞에 흐르는 레테의 강물처럼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날 휘감고 놓치 않는다


기뻐하지 마라 이것은
네가 늙어간다는 증거


어떤이에게는 기쁨이지만
어떤이에게는 슬픔

어떤이에게는 저주가
어떤이에게는 축복

내가 손댄 그 자리의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불행

누군가의 피치못할 선택이
내게는 평생의 미련


하지만
두조각 나 깨어진 병이
헤어진지 오래 되어
날카로움을 잃고 무디어진다고
그 기억조차 잊고
다시 만나도 맞물리지 못할까

사과꽃

2006. 4. 28. 11:49
우연히 지나치던 사과꽃잎 사이에서
오래전 내가 유영했던 삶의 한 단락이 솟아나왔다

의도적인 상실이라고 했던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며 기도한게 언제였던가
장담하며 파안한 그 치기는
이제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나와 상관 없는 것인양
교육청추천도서의 한구절처럼 들떠 지나간다

뚜렷이 새겨넣을 독후감도 만들어내지 못한채
세번의 홍역을 겪고난 들개처럼
눈빛만 독해지고
흉터도 지우지 못한 얼굴로
누런 이빨을 내보이며
웃고 있다

"앞으로도 당신은 주문처럼 한순간 한순간
생각해내고 또 생각나고 또 지우는걸 반복할거라"

바람은 사월의 마지막을 못이기는 척 잦아들고
그렇게 나는
재즈와 구속 사이에 서있었다

애벌레

2006. 4. 9. 11:48
오래지 않아 깨고 나왔다
미칠 것 같이 내 혼을 쥐고 흔들던 소외

바깥은 뭔가 다를줄 알았던 것도 아닌데
기대하지 말자고 입만 열면 되뇌었으나
일말의 여지도 남김 없이
황사비에 씻겨 내려갔다

꿈틀거리고
난수처럼 내려 앉는 하늘을 피하며
이제서야 두번의 깊은 계곡에서 올라온건
내가 아닌 내 욕심들이 뭉쳐진 망령이었던가

절뚝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닐거야
아닐거야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한
간절한 목마름들은
이렇게 한가닥 한가닥 얽혀
내 의도와 상관 없는 어떤 봄날에
상달될까


밟히려면 한번에
생각할 틈도 주지 말고

찢기려면 한번에
잠시의 시간도 머뭇거리지 말고

봄꽃

2006. 4. 2. 11:47
여전히 아름답네요
여전히 화사하네요

어김없이 다시 온 사월의 햇살처럼
아주 멀리서라도 찾아낼 수 있는 미소는

여전히 숨을 죽이게 하네요

많은 날을 보내고 우연히 받게된
아주 짧은 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원망과 미련과 애태움의 잿더미가
포근한 남동풍에 모두 날리우듯
잊혀져버렸네요

맞는가 봅니다
사람은
좋은 기억만 남겨두도록
하나님이 설계하셨다는 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 순간을 감사하게 되었네요

어쩌면 깊은 물의 심해어처럼
어쩌면 눈덮인 산의 순록처럼

세상의 끝에서 뒷걸음치며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하던 시간들이
날 비웃듯 스쳐지나가며
그동안 잘 참아왔던 설움이 쏟아져 내리고 말았어요

바보처럼 약속만 너무나 잘 지키고 있는
OOOO 내가 미운
하루입니다

계단

2006. 3. 12. 12:46
긴 광야를 지나
목표라고 생각했던 그 곳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콘크리트 싸늘한 잿빛 턱은
겨우내 차가운 햇빛에 그을였던 자욱인양
내팽개쳐져 있었다

선택보다 운명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교과서보다 이모션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궁극적 I형 나에게도
이렇게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쥐게 하는 그 무엇이
계단 앞에 놓여있었다

꿈결같은 시간들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지옥 문 앞의 오르페우스처럼
난 매일 그 시간들을 위해 하프를 켜고
난 매일 그 뒤를 돌아보고
또 매일 돌이 되고 만다

이렇게 첫 단도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하루 하루의 후유기는
이 숱한 인과의 사슬로 얽힌 모든 핏빛 기억들로
가득히 채우고
또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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