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behind stories of my indian summer

소외

2006. 1. 4. 12:40
눈이 오지 않는 어느 맑고 추운 겨울밤
너무나 낯선 그사람을 발견하다

목표를 잃은 마라톤 선수처럼
달려가는 것을 멈추고
문득 허공에 걸려 있는 촛점 잃은 내 눈을 보았다

인생은
그 파아란 물결 속에
붉은 피를 숨기고 있는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얼굴

이대로 봄이 와버린다면
무엇으로 날 속이며
이대로 잠이 깨어버린다면
무엇으로 내 야윈 다리를 지탱할 수 있을까

오늘만큼은
내 남은 인생이 너무나 길다

질투

2005. 8. 19. 11:38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하나아 두울 세엣

별의 별 민간요법과 마인드컨트롤로
다스려본들
아무런 소용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가장 쉽게 망가뜨릴 수 있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젤러시

한치 앞도 안보이는
안개속의 외줄타기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뛰어드는
거친 발걸음

길가에 핀 어여쁜 꽃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손바닥을 피투성이 만들면서도
참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꽉 쥐는
욕심

이글거리는 눈빛과
꽉다문 어금니
핏줄 솟는 손등
몰아쉬는 숨

이런 조악한 것들을 가지고
무모하게
당신을 질투합니다
아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장마

2005. 7. 9. 11:32
기다려왔던 비가 실컷 쏟아지고
그 틈을 타 숨겨왔던 마음들 실컷 쏟아내본다

언젠가 웃음으로 기억해줄 날이 있겠지

많은 비가 내릴땐
다시는 해가 뜨지 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니,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큰 탓이리라

언젠가 진심으로 기억해줄 날이 있겠지

하얗게 아름다운 눈보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보다
난 이런 축축한 비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손을 내밀어 기다리면
정에 못이겨 비를 내려주는 여름과 같이
미약하고 소극적인 자존심

언젠가 이해함으로 기억할 날이 있겠지

이렇게 비와 내가 하나가 되어 쏟아지면
순간은 영원처럼 정지되어
그 빗방울 하나하나처럼
내가 했던 진실의 말들이
멈추어 그 생명을 다해간다

언젠가는
차갑게 쳐다보지 않고도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도
저만치 거리를 두어야 안심하게 되는 마음을 갖지 않고도

"그래, 진심이었겠구나"

라고 믿으며
이 끝없이 쏟아지는 장마비처럼
아낌없이 주었던 모든 것을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

기억

2005. 6. 13. 11:32
이놈의 인생은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홧병과 같은
내 오랜 아킬레스건을 잘 알고 있다

봄날처럼 따스한 푸근함으로
겨울바람처럼 시린 배신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반응을 재본다

touché..

나른한 눈빛으로 내 살갗을 매만지는가 하면
날카로운 5인치 단도로 내 깊은곳을 도려낸다

그리고 나서는 생경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빈정대고 마는
이놈의 인생은
저만치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한 녀석이다

grijp..

도덕과 통념과 양심과 종교와
나를 지탱하고 있던 수많은 기준치들은

한번 오고 다시 오지 않는
풋풋한 풀냄새 나는 에로스의 첫사랑처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너지고 만다
무너지고 만다

remembre..

네가 기억하는만큼까지는
난 이 인생의 후회는 없다

도리어 더 많은 살에 베이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

이놈의 인생은
온힘을 다해 내던진 돌에 맞고도
아무 일 없이 밀려내려가는
큰강물과 같다

아이리스

2005. 5. 15. 11:30

벚꽃이 지는 때가 되면
5월의 밤공기가 스며들고

기억만으로 만족해야 할 날들이 오리라
가슴을 가라앉혀 보려 하지만

내가 품었던 그 지경의 넓이만큼
하루 하루 헤매이며 휘돌아야할
상실의 넓이도 비례하는것

축축한 늪지대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크림색의 아이리스처럼
아주 미약한 숨결에도 그 꽃잎을 떠는
당신께 이 5월을 드립니다

이십년전 이 즈음에
나 꿈꿔왔던 그런 환상들이
많이 멍들고 많이 바래어
이 모습이 되었지만

기억 속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그 붓꽃의 약한 향내음처럼

이 나른하고 숨막히는 5월을
나 아직도 가슴 설레며
잔잔히 당신 발 앞에 무릎꿇어 놓아둡니다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9)
후유기 (59)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태그목록

달력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