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낯선 그사람을 발견하다
목표를 잃은 마라톤 선수처럼
달려가는 것을 멈추고
문득 허공에 걸려 있는 촛점 잃은 내 눈을 보았다
인생은
그 파아란 물결 속에
붉은 피를 숨기고 있는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얼굴
이대로 봄이 와버린다면
무엇으로 날 속이며
이대로 잠이 깨어버린다면
무엇으로 내 야윈 다리를 지탱할 수 있을까
오늘만큼은
내 남은 인생이 너무나 길다
사람의 마음을
가장 쉽게 망가뜨릴 수 있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젤러시
한치 앞도 안보이는
안개속의 외줄타기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뛰어드는
거친 발걸음
길가에 핀 어여쁜 꽃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손바닥을 피투성이 만들면서도
참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꽉 쥐는
욕심
이글거리는 눈빛과
꽉다문 어금니
핏줄 솟는 손등
몰아쉬는 숨
이런 조악한 것들을 가지고
무모하게
당신을 질투합니다
아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축축한 늪지대에 어울리지 않게 밝은
크림색의 아이리스처럼
아주 미약한 숨결에도 그 꽃잎을 떠는
당신께 이 5월을 드립니다
이십년전 이 즈음에
나 꿈꿔왔던 그런 환상들이
많이 멍들고 많이 바래어
이 모습이 되었지만
기억 속에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그 붓꽃의 약한 향내음처럼
이 나른하고 숨막히는 5월을
나 아직도 가슴 설레며
잔잔히 당신 발 앞에 무릎꿇어 놓아둡니다